Monster Keeper 完

정국이한테 한 번 물어봤던 적이 있었다. 만약에 정말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그 애는 한참 고민하다가 이런 대답을 내뱉었다. 학교도 다니고 싶고 벚꽃도 보러 가고 싶고 피시방도 노래방도 형이 말했던 모든 곳들을 다 가보고 싶다고. 그리고 나서 나직하게 덧붙였다. '근데 이제는 다 괜찮아졌어." '왜?' '내가 괴물이라서 ...

정국아. 귀에 익은 나직한 목소리. 정국은 본능처럼 뒤를 돈다. 머리 위로 진득하게 흐르는 것을 닦아내고 뜬 그의 눈이 푸른색이었다. 왼쪽 눈두덩에 묻은 핏자국을 마저 닦아내고 다시 눈을 뜨니 이내 잠잠한 고동색이다. 정국은 땀과 피에 절은 머리를 쓸어넘긴다. 상하체로 나누어진 사지가 그의 앞에 놓여있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맨몸이 피로 온통 얼룩졌다. 투...

JK side

오래된 기억을 되짚어 보는 습관이 생겼다. 조용한 새벽, 푸르고 시린 달빛에 의지해서 머릿속을 더듬다 보면 하나둘 잊어버렸던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가 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형이 앓는 소리를 내서 얇은 이불을 끌어 형의 가슴 위를 덮었다. 몇 번 도닥이니 잔뜩 찡그렸던 눈이 편안하게 펴졌다. 요즘 형이 나쁜 꿈을 꾸는 일이 많아진 것 같...

커다란 통나무가 몸을 짓누르는 꿈을 꿨는데 눈을 떠보니 통나무 못지않게 무거운 정국이의 발이 내 배 위로 올라와 있었다. 그래놓고 자기는 세상 곤하게 잠이 들어 있다. 사람 악몽 꾸게 해놓고 혼자만 평화롭게 자는 게 괘씸하기도 해서 정국이 코를 살짝 꼬집었더니 잠에 앓는 소리를 내면서 품으로 파고든다. 나도 몸을 틀어 정국이를 마주 안았다. 깊게 들이쉬고 ...

꿈을 꿨다. 정국이가 나왔다. 꿈속의 정국이는 내가 알고 있던 정국이와는 달랐다. 말도 어눌하지 않았고 여느 대학생처럼 활발했다. 조금은 수다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보통의 친구 사이처럼 밥을 먹고 카페에 갔다가 피시방에 가서 함께 게임을 했다. 그러다 보니 어즈넉한 저녁 즈음이 되었다. 따뜻한 가로등 빛이 찬 골목을 비춘다. 막 헤어지기 직전에 ...

숲을 채우던 총소리도 비명소리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이젠 내 스스로 외는 숫자 소리, 그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감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잔뜩 몸을 웅크린 채로 입을 벌려 수를 세는 내 머리 위로 묵직하고 따뜻한 무언가가 얹어진다. 눈은 뜨지 않았지만 나는 그 온기의 주인을 안다. 머리에 얹어졌던 손이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와 볼을 쓰다...

늪과 같은 꿈을 꾼듯하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며 간헐적으로 기침을 했다. 기침을 하며 몸을 돌려 누웠는데 발끝에서 모래알이 느껴졌다. 찌푸리며 눈을 뜨니 익숙한 하얀 천장이 아닌 탁 트인 숲속이 보였다. 꿈인가. 몸을 반쯤 일으키고 나서야 내 곁에 쪼그리고 앉아 나를 보고 있던 정국이를 발견했다. “아 깜짝이야.”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을 꺼내고 주변을...

정국이의 상체와 하체에 총 12발의 총알이 박혀있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견뎌내지 못했을거다. 나는 피로 젖은 잠옷을 입고 잠이 들은 정국이의 몸에 박힌 총알을 하나하나 빼어내고 붕대를 감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떻게 한 겁니까.” 나를 두고 도망쳤던 남자가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어떻게, 당신이 멀쩡하게 여기에 있을 수 있어...

나는 그 이후로 다시 정국이를 보러 내려갈 수 없었다. 몇 번이나 가기 위해 노력해봤지만 자꾸만 비디오 속 시체들이 떠올라서 헛 구역질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며칠 동안 정국이의 아침도 챙겨주지 못했다. 내가 가지 못하겠다고 하자 스피커 너머의 남자는 다 알겠다는 목소리로 짤막하게 쉬라는 말만 덧붙이고 신호를 끊었다. 그럼나는 종일 침대에 누워서 자...

센터의 아침은 언제나 비슷하게 돌아간다. 오전 8시 20분 정국이의 오전 상태를 체크하고 밥을 먹이면 1시간 뒤에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 3명이 들어와 나를 내쫓는다. 몇 번은 나가지 않겠다고 고집도 부려봤는데 소용이 없었다. 문에 작은 구멍이라도 뚫려있으면 좋으련만. 대체 들어가서 뭘 하는 걸까. 나는 단단히 닫힌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벽에 등을...

어린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게 다 긁혀 제대로 된 소리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를 가졌다. 나는 그 입에서 나온 이름 석 자에 굳는다. 이름으로써 더욱 확실해졌다. 그가 동물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아까보단 경계가 조금 풀어진듯해서 근처에 있던 의자를 가지고 그 옆에 앉았다. 바짝 긴장했던 몸에 힘이 빠져서인지 몸과 고개도 푹 아래로 숙여진다. 길게 수갑...